한상규 논설위원

한상규 논설위원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사회규범, 제도 도덕적 굴레서 이탈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게 되어있다. 프랑스 정치,교육사상가 루소(1712~1778)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연 상태에서 사회 상태로 적응하면서 사회가 정한 규범에 따라야 하는 불평등을 지적하였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려면 자연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조금 다른 모양새지만 TV에서 '자연인으로 살고 싶다'는 프로를 보면 시청자 대부분이 공감한다. 저렇게 사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고 자유롭고 평화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시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경제활동과 자녀교육 때문에 할 수 없이 살고 있지만 산촌생활을 동경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유 있는 사람은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별장을 지어 주말마다 이용하거나,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귀농을 위해 농촌으로 찾아간다.

 그런데 생각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럴가 그 이유는 루소가 말한 ‘인간불평등’을 알고 나면 간단하다. 자연인은 정의, 선악, 양심, 이성이 잠재능력만으로 존재하는데, 도시인은 감성이 지배하면서 자연 상태를 이탈한다.

 그렇다면 도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도시를 떠날 수는 없다. 노년일수록 병원과 시장이 가까워야 한다는 현실성을 외면하고 자연으로 돌아 갈 수 는 없다. 최근 통계를 보면 서울시에 거주하는 주민이 가장 장수한다고 한다. 현재 100세 이상이 1천800여 명이다. 이웃 일본은 1만 7천 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시 주택 등 모든 건물에서 노인들이 활동하기 편리한 시설로 교체한다고 한다. 노령 인구가 급증하고 저 출산으로 20년 이후에는 도시가 생산성을 상실하게 될 전망이다. 앞으로 유아를 돌보는 어린이 시설보다는 노인을 위한 '노인유치원'이 필요한 시대가 곧 온다. 도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참된 자연인을 위한 정책이 개발되어서 도시인이 편견과 오류에의 속박되지 않는 인문학적 사고가 입안되어야 한다.

 한국은 지자체가 시작되면서 규모를 떠나서  전국토가 도시화되고 있다. 중국인들은 연령별로 인생단계를 정하고 있다. 1살에는 자신이 우선, 10살에는 공부 잘하는 것이 우선, 20세는 좋은 사람 만나는 것이 우선, 30세는 좋은 이력을, 40세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과 건강을, 50세는 마지막 게임에서 승자가 되는 것, 60세는 성생활을 할수 있는 노익장, 70세는 사람과 재산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을, 80에는 움직이는 것이 우선, 90에는 방향을 아는 것이 우선, 10세에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벽에 초상화를 거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다.

 한국인은 인생 단계를 어떻게 설정할까 살펴본다. 20세 이후 좋은 사람만나고 자립생활로 정착하는가. 부유한 사람은 매일 부동산 중개사를 찾아 돈 될 만한 부동산을 찾아 계속 사 모운다. 그런 사람을 보고 "죽으면 그 많은 재산을 어찌 할건가"고 물으면 재산 증식 그 자체가 할 일이라고 한다. 그러지 말고 복지나 문화재단을 설립헤서 사회에 뜻있는 일을 하라고 조언해도 듣지 않는다. 부산에 아파트 40채 외에 부동산이 많아서 본인도 파악하지 못할 지경인 사람이 있다. 그런데 요즘 경제가 어려워 전세가 안 나가고 다운되고 세금이 많이 부과되니 팔려고 해도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 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일생동안 세권의 책을 쓴다고 한다. 과거란는 책은 책장에 보관하여 보지 않는다. 현재라는 책은 지금 나의 모습을 담고 있다. 미래라는 책은 머릿속에만 있다. 과거, 미래의 책은 부록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라는 책을 쓰는 사람이 제대로 사는 사람이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과거는 역사의 책이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안고 있어서 초조하면서 순간적인 선택에 고민한다. 미래는 불확실 하고 불안하고 믿을 수 없다. 여기서 시간, 인간, 공간의 3간에서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재에 대한 압박감에 사로잡혀 과거를 잊고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과거 보릿고개를 겪으며 살아온 노인층은 검소하고 알뜰하여 한 푼이라도 모아서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살림에 보탠다. 반면에 50대 이하는 돈이 생기면 쓰고 보자는 심사다. 저소득층 아파트서 월세를 살아도 자동차는 있어야 하고 해외여행도 일년에 두 차례는 가야한다고 한다. 미래가 없다. 문제는 이들 부모는 이런 자식에게 애써 모은 돈을 생활비에 보태주고 있다.

 며칠 전 산해정 갔다 내려오는 길목에서 한 노파를 보았다. 그 노파는 텃밭이라도 가꿔서 농사지은 것을 보따리에 싸서 40분마다 오는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돈으로 치면 몆푼 안되지만 애쓰는 모습이 거룩해 보인다. 마침 지나는 길에 경전철까지 태워주면서 "자식들 보고 가지러 오라 하지 왜 이런 고생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가지러 오라하면 바쁘다고 안온다고 하니 내가 갔다 주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고생하는 것이 이골이 나기도 하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에 고생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부모들은 이렇게 살고 있다. 이런 부모가 있기에 도시에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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